하루 종일 집에 있었는데 이상하게 남는 게 없는 날이 있다. 분명 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특별히 바쁜 일을 한 것도 아닌데, 저녁이 되면 하루가 통째로 사라진 느낌이 든다. “오늘 뭐 했지?”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딱 떠오르는 장면이 없다. 이런 경험은 게으르거나 계획을 못 세워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. 집에서 보내는 시간에는 시간을 빠르게 증발시키는 구조적인 특성이 숨어 있다.집에서는 시간의 경계가 흐려진다 집 밖에서는 시간이 비교적 명확하게 나뉜다. 출근, 이동, 약속, 퇴근처럼 일정 단위가 존재한다. 하지만 집에서는 이 경계가 사라진다. 아침과 점심, 낮과 저녁의 구분이 흐릿해지고, 특정 행동의 시작과 끝도 분명하지 않다. 이 상태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기 어렵다.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감각..